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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2reojimayo)님께서 제작하신
‘Hey Child’ 영상을 기반으로 작성한 단문입니다.
내가 아동학자는 아니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바가 있다. 머리통이 말랑말랑한 꼬맹이들(Chicos)에겐 산타클로스가 필요하다. 적어도 아기예수를 찬양하고 길거리에 캐럴을 틀어 놓는 나라의 어린애들한테는 그 수염달린 우스꽝스러운 할아버지는 최고의 슈퍼히어로거든. 그런 바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을 명절로 보내는 미합중국에서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대교는 빌어먹을 종교임에 틀림없다. 특히나 어린 자식이 있는데 명절에 선물을 준다든가 하는 기본적인 구색도 맞추지 않는 저 스펙터 집안은 말할 것도 없지. 그래서 나는 기꺼이 저 어린 스펙터만을 위한 산타클로스가 되기로 했다. 말했듯이, 모든 꼬맹이들한테는 산타클로스가 필요하니까.
그런데 이 산타클로스 업계에서는 아주 지랄 맞은 전통이 하나 존재했다. 우는 애한테는 그 해 선물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진짜? 태어나면서부터 울어 재끼는 게 종을 불문한 애새끼들의 전통 아닌가? 어떻게든 선물을 하나라도 덜 주려는 어른들의 생존 전략은 그야말로 추악하기 그지없었다. 마크 스펙터는 거의 매일을 제 방 구석의 벽에 기대 훌쩍이는 꼬맹이었기 때문에 이 관행을 따라야 할 경우 이 자식은 영영 선물 받기는 글러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날 때 마다 도서실로 달려가 다른 방법이 없는지 열심히 찾아보았다.
아마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다 나는 아주 근사한 대안책을 찾아냈다. 지금에야 산타마을이니 산타의 종주국이니 으스대는 북유럽에서 산타는 원래 선물을 주는 푸근한 요정이 아니라 못된 사람들을 골탕 먹이고 벌주던 악령이었다는 것이다. 차라리 이게 낫겠네! 큰 선물 보따리를 주진 못해도 마크 스펙터가 고소하다 생각할 만한 아이디어가 당장에 몇 개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크리스마스가 며칠 안 남은 날이기도 했다. 나는 스펙터의 두 어른들이 곯아떨어진 한 밤중에 이 집안 여자가 물 보다 많이 들이키는 술병의 마개를 모조리 따 병 안에 있던 액체를 전부 하수구에 쏟아 부었다. 그러고는 빈 병에 수돗물을 채워 다시 마개를 닫고 원래 놓여있던 위치 그대로 병들을 장 안에 진열 해 두었다. 다음날 아침, 슬픔을 핑계 삼아 술병을 든 여자가 잠시 후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모습을 마크 스펙터의 등 뒤에서 보는 건 아주 짜릿했다.
영특한 마크 스펙터는 그새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선물을 수여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사실은 우연한 사고로 만들어진 선물이었지만. 솔직히 나는 그걸 ‘선물’이라 말하는 게 맞는지 아직도 종종 헷갈리곤 한다. 하지만 마크는 그게 제 인생에서 자신이 받은 최고의 선물이라 생각하니 뭐 어쩌겠는가. 녀석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건 선물이 맞겠지, 뭐. 그 선물은 반짝이는 포장지에 쌓여서 예쁜 리본이 묶인 형태로 마크에게 도착한 건 아니었지만 ‘스티븐 그랜트’라는 근사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마크는 그 선물을 아주 소중히 여겨 평소에는 꽁꽁 감춰놓다가 자신이 너무 힘든 순간에만 잠시 꺼내다 보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항상 긴장하고 주눅 들어 있던 꼬마의 등이 스티븐 그랜트를 볼 때만큼은 편하게 풀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아이의 등이 평소에 항상 위축되어 있다는 건 아주 지랄 맞은 상황이지 않은가? 나는 그럴 때 마다, 그러니까 가끔 저 녀석이 평소보다 더욱 힘들어 하는 날, 그래, 스티븐 그랜트를 꺼내 보는 날이 생기면 어김없이 녀석을 힘들게 만든 원인을 찾아 골탕을 먹이곤 했다. 그게 꼬맹이 스펙터의 기분을 더 낫게 만들었는진 모르겠다. 보통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눈치였으니 그럴 수밖에. 어쨌든 녀석의 등은 도통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딱한 꼬마 스펙터(Spector, Pobre chico). 그래서인지는 모르겠는데 녀석이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자라는 와중에도 나는 녀석이 도무지 자라는 것 같지 않았다. 남들이야 모르겠지만, 걔는 언제까지나 열 살 꼬맹이 시절에 머물러 있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한 번은 정말로 제대로 된 선물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꼬마 스펙터가 열다섯 살 때였나? 아마 맞을걸. 빌어먹게 상냥한 어른 스펙터 양반이 이 대명절 기간 동안 마크를 혼자 집에 두고 제 아내만 챙겨 친가로 가버린 그 끝내주던 크리스마스 시즌 말이다. 맞다, 정정해야지. 이 집안에선 “해피 크리스마스!” 같은 인사는 일절 통하지 않는다. “해피 홀리데이”?, 나쁘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대장 스펙터 씨는 아주 신실한 유대교인이라 “해피 하누카!”라고 외치는걸 좋아하신다. 내 알반가. ¡vete a la verga! 꼬맹이 스펙터에겐 해피도 없고, 하누카도 없었다. 그 잘나신 아버지는 어차피 너는 가도 좋아하지 않느냐느니, 괜히 가서 엄마와 트러블이 일어나서 맘고생 하느니 차라리 집에서 푹 쉬고 있으라느니 어쩌구저쩌구, 말은 아주 번지르르하게 아들을 위하는 듯 말했지만, 내가 대충 해석해보니 그 뜻은 그러했다. “이 기쁜 명절까지 너 때문에 피곤하게 지내고 싶진 않다.” 어쨌든 그 인간은 죄책감이 아예 없지는 않았는지 명절 선물이라며 용돈을 두둑이 건네주고 떠나버렸다. 아, 내가 말했던가? 나는 당연히 유대교 신자가 아니다. 저 거지같은 인간들을 품어주는 신이란 양반이랑은 죽어서도 상종하기가 아주 껄끄러울 것이다. 얼굴 볼 기회나 있을까 싶지만, 보는 순간 욕을 박든지, 주먹을 박든지 할게 자명할 테니까. 그러니까, 내가 그쪽을 믿지 않는 건 그쪽한테도 좋은 일이다.
어쨌든 마크 스펙터가 그 돈으로 평소 갖고 싶던 물건을 사서 기분이라도 풀었다면 좋았으려만, 이 멍청하고 불쌍한 녀석은 책상 서랍 안에 받은 지폐뭉치를 그대로 쑤셔 박아둔 채 저녁도 먹지 않고 침대에 머리를 처박고 잠들고 말았다. 며칠 동안이나! 내가 이 녀석의 부모였다면 명절이고 자시고 진작 병원에 끌고 갔을 텐데 불행하게도 녀석의 ‘진짜 부모’는 차로 몇 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곳에 있었으니, 아마 꼬맹이 스펙터는 부모를 위한 명절 선물로 싸늘하게 식어버린 마지막 남은 아들의 시체라도 안겨 줄 생각이었나 보다. 안 될 일이지. 나는 결국 이 답도 없는 애새끼가 기운 없이 기절하듯 잠들어 있을 때를 틈타 입 안에 소화가 잘 될 만한 스프를 쑤셔넣어주고, 물도 한 석 잔정도 마셔준 다음 서랍 안에 처박아둔 지폐 더미를 잘 긁어모아 장난감 가게로 향했다.
이 자식이 도통 자랄 생각을 안 해서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가게를 지나다가 가끔 진열장에 놓인 끝내주는 바디를 가진 흰색 리무진 모형을 뚫어져라 쳐다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녀석은 여전히 끝내주는 생김새로 가게에 남아 있었고 나는 점원에게 지폐를 내밀며 저 친구를 넘겨 달라 부드럽게 말했다. “동생한테 크리스마스 선물하려고?” 점원이 그렇게 물어서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충 동의했다. 그런 셈이죠. 나는 하얀 종이박스를 시선이 확 집중되는 번쩍거리는 황금색 포장지로 상자를 포장하고 빨간 리본까지 동여맨 다음, 그 선물을 아주 잘 보이는 장소에 두고나서 침대에 누워 꼬맹이 스펙터가 다음 날 깜짝 선물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기대하며 눈을 감았다. 당연히, 다음 날 전 날 보다 괜찮아진 몸을 일으킨 마크 스펙터가 머리맡에 놓인 요란한 광채를 뽐내는 선물을 보고 놀라 자빠진 건 말할 것도 없다. 아마 평생 누가 그 선물을 놓고 갔는지 녀석은 모르겠지만, 산타클로스가 존재한다고 믿어주면 좋을 것 같다. 어린 애들은 그런 설레는 믿음 하나 정도는 갖고 있는 게 좋다. *메리 크리스마스.* 머뭇거리다 선물을 꺼내는 녀석의 등을 보며 나는 소리 없이 아이에게 명절 인사를 건넸다.
그 하얗고 기다란 리무진은 방 안 책장 맨 윗칸의 우주비행사 친구 옆에 놓이는 행운을 얻었다. 거긴 마크 스펙터가 정말로 좋아하는 장난감만 허락 받을 수 있는 칸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커버린 녀석이 “이제는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진열 할 나이는 지났지.”라고 말하며 제 손으로 손수 추억 상자에 넣는다든가, 아니면 더 어린 친구들을 위해 벼룩시장에 내놓든가, 그것도 아니면 고아원 같은 곳에 기부했다면 나도 그러려니 생각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한 뼘도 자라지 않은 그 꼬마 아이가 장난감을 정리하기도 전, 집 안에서 밀려나듯 가방 하나만 달랑 챙겨 집을 나서는 바람에 방 안에 덩그러니 남아버린 장난감을 생각할 때 마다 나는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 스티븐 그랜트는 자신이 너무 자라버리는 바람에 장난감을 전부 정리했다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독립할 때 하나 정도는 챙겨 올 걸.”이라 말하며 아쉬워했지만 그게 애초에 가능 할 리가 없었다. 스티븐이 혼잣말로 그렇게 볼멘소리를 할 때 꼬맹이 스펙터의 등이 한껏 쪼그라들어 “미안해.”하고 들릴 리 없는 사과하는 모습을 나는 멀리서 지켜만 봐야 했다. 우리 모두 녀석을 따라 움직였기 때문에 누구도 그 장난감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 할 수 없었다.
내가 녀석한테 아직도 산타클로즈가 필요하겠다 생각한 순간이 몇 차례 더 있었다. 집을 나가서 대뜸 해병대에 자원입대 해버린 꼬마 녀석은 더러운 흙바닥을 구르고, 무거운 소총을 들고 과녁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기고, 중동으로 파병을 떠날 정도로 대충 어른 흉내를 냈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항상 무언가를 바라는 얼굴로 아침마다 침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고개를 바쁘게 움직였다. 한 번은 손을 모아서 기도 비슷한 걸 한 적도 있었다. 뭘 바라고, 무슨 말을 했을지는 듣지 못했는데, 나는 본능적으로 녀석이 나를 찾고 있다는 걸 알았다. 불행하게도, 산타클로스는 아이들에게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됐기 때문에 나는 거울너머 침울한 녀석의 표정을 보면서도 인사를 건네진 못했다. 나중에, 한 번 정도는 얘기를 나누어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 해 봤자 더 나아지는 건 없었다.
언제 후회를 했냐면- 사실 여러 번 했다. 녀석이 결국 파병을 떠나 팔루자에서 전쟁터를 마주한 뒤 너무 큰 충격에 자기도 모르게 스티븐 그랜트를 불러내 밤새 돌아다녔을 때라던가. 결국 본국에 송환 돼 의병제대를 해버렸을 때라던가. 제대가 도화선이 되어 정신병원에 입원 한 기간이라던가. 거의 탈출하듯 병원을 빠져나와 잡일을 전전하다 녀석이 파병 중에 활약한 이력을 눈여겨보던 CIA의 스카우트에 응했으나 그놈의 “정신병력”이 결국 발목을 잡아 최종적으로 발탁되지 못했던 날이라던가 등등 말이다. 아니면 적어도 그 싸이코패스같은 전 상사의 연락을 받고 모로코로 떠나는 비행기 표를 끊던 날에라도 거긴 가면 안 된다고 불쑥 나와 말이라도 해줬어야 했다고 아직도 종종 생각 할 때가 있다.
가장 크게 후회 했을 때는 꼬마의 배에 총알구멍이 난 몸뚱이를 질질 끌며 핏자국을 남긴 채 신전으로 기어 들어갔던 이집트에서의 그날이었다. 나는 그 날에서야 이전까지 항상 이 꼬맹이의 등만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가끔 거울이나 유리창이 있을 때 녀석의 우울한 표정을 보기도 했지만, 정면에서 녀석의 얼굴을 쳐다본 건 그 날이 처음이었다. 나는 이 작고 외로운 소년이 그 수많은 해를 보내며 지금까지 얼마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제 몸을 수없이 던지며 고민해 왔는지를, 그가 제 턱 아래 총구를 들이밀었을 때 알게 됐다. 누군가에게 수없이 간절하게 질문을 구했지만 아무도 대답 해 주지 않던 침묵 속에서 기이하게 자라버린 아이. 스티븐 그랜트는 그 질문에 대답 해 주지 못한다. 녀석은 절대 스티븐한테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테니까. 아, 내가 답을 해줬어야 했는데. 혼자 남겨졌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도록.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건 결국 그거였다. 나도 결국은 녀석과 다를 바 없는 꼬맹이였기 때문에.
어렸던 우리는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날의 기적을 기점으로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결국 삶의 경계선으로 몸을 틀어낸 꼬맹이 스펙터는 이후로도 자기 앞에 펼쳐진 삶이란 끝없는 고통과 갈등의 연속임을 알고는 좌절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걸 멈추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그 고난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죄책감과 책임감을 어깨에 얹은 채 구부진 등으로 힘겹게 카이로로 걸어 간 마크 스펙터는 라일라 엘 파울리라는 여성을 만났다. 사랑하는 가족의 부고로 슬퍼하고 상심했지만 그녀의 눈은 총기를 잃지 않고 반짝 거렸다. 마크는 그 놀랍도록 생명력 넘치는 눈빛을 보고는 단숨에 사랑에 빠져 버렸다. 그 험난한 길에 옆을 채워주는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마크에게 용기와 위안을 줬는지는 녀석의 등을 한 평생 지켜본 나만치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다. 녀석의 등이 점점 곧게 펴지더니 순식간에 커지기 시작했다. 사랑과 책임을 배우며 꼬맹이가 어른이 된 것이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녀석이 앞으로는 부디 행복한 일이 많아지기를 바라며 신께 기도를 올렸다. 그러고 보니 말하는 걸 깜빡 했는데, 이 때 나는 믿는 종교가 생겼다. 신이 펼치는 기적을 바로 앞에서 목격했는데 종교를 갖지 않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유대교도,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전혀 아니지만. 신앙을 갖게 되니까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더라고. 뭐, 그렇다는 얘기다. 나도, 녀석도 안정을 이루고 성장했으니 좋은 거 아니겠는가? 그리고 마침내 마크 스펙터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장난감을 추억 상자에 넣어두고 어른이 되었다. 나는 행복한 꿈을 꾸며 잠들어 있는 스티븐 그랜트가 든 하얀 상자를 품에 안은채, 멀어져 가는 청년 스펙터의 듬직한 등을 바라보며 작별을 고했다. 어른에겐 산타클로스는 더 이상 필요가 없지. 잘 지내라고, 친구(Adios, amigo).
나는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마크 스펙터를 잊고 살았다. 녀석을 못 본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도 기억하지 못 할 정도로. 그래서 나는 기분 좋게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하는 꿈을 꾸다가 갑자기 의식 밖 세계로 튕겨져 나와 버렸을 때, 엄청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거 느낌이 안 좋은데. 깨어나자마자 내가 생각한 건 이거였다. 진짜 느낌이 안 좋은데. 당연한 일이다. 내가 이렇게 깨어났다는 건 마크 스펙터의 인생이 아주 지랄 맞게 꼬였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우리의 빌어먹을 마크 스펙터는 등을 잔뜩 구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숨이 넘어갈 듯 꺽꺽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방 안에서 쭈그려 앉아 엉엉 울던 때처럼. 아니, 잠깐만. 네 빛줄기는 어디 갔어? 라일라 엘 파울리가 왜 네 옆에 없는 건데? 아주 오래간만에 깨어났더니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그 와중에 손이 허전하다 생각이 들었는데 언제 상자에서 나온 건지 스티븐 그랜트가 내 근처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팔자도 좋다. 나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둘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마크의 잘게 떨리는 등 너머로 녀석이 누군가를 간절히 찾아 부르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어른으로 자라기를 포기한 꼬맹이의 훌쩍임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졸고 있던 스티븐의 엉덩이를 걷어 차 녀석의 품에 안겨주었다. 안 죽어버리고 잠들어 있길 잘 했네.